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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창과 대학생 휴학 후 재수 현재 3년제 문창과에 재학 중인 1학년 대학생입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부터
현재 3년제 문창과에 재학 중인 1학년 대학생입니다. 제가 고등학생 때부터 흥미를 가진 진로가 없어 적성에 맞는 듯한 문창과에 진학해 1학기를 보냈는데 대학교에서 현실과 조우하면서 미래 비전이 없다는 과의 불확실성에 휴학을 고민 중입니다. 집안 상황이 넉넉하지 않은 터라 미래를 위해 등록금이라는 거액을 투자하지 못할 것 같더라구요.... 휴학 후에 재수를 생각 중인데 부모님이 추천해주신 경복대 간호학과를 생각 중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고민이 길어져서 아마 재수는 내년까지 지속될 것 같네요.... 사실 간호학과도 그렇게 끌리진 않지만 미래를 위해 도전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이에요. 지금 딱히 목표로 둔 직업도 없으니 재수를 해보려고 합니다. 일단 휴학 후에 바로 알바를 시작해서 재수와 토익 공부를 병행하고자 하는데 제 선택이 맞는 걸까요? 앞서 같은 고민을 해본 적이 있으실 분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싶습니다.
저는 한국출판학회의 상임이사이며 언론사 더스쿠프의 랩장을 맡고 있습니다. 과거 문학신문(뉴스페이퍼)의 발행인이자 편집장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출판 현장과 취재, 제작, 교육을 함께 하고 있어 문예창작과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문예창작 교습소를 운영하며 성인 수강생과 현업 초년생들을 오래 만나 왔습니다. “대학생 휴학 후 재수”라는 갈림길 앞에서, 지금 필요한 말은 학원·실기 얘기가 아니라 성인으로서의 선택과 삶의 설계입니다.
먼저 불안부터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문창과라서 미래가 없다”는 말은 절반의 진실입니다. 창작만으로 당장 생계를 세우기 어렵다는 뜻에선 사실이지만, 글쓰기를 바탕으로 먹고사는 길은 오히려 더 넓어졌습니다. AI가 문장을 찍어내는 시대라서가 아니라, 문제를 이해하고 맥락을 설계하고 언어로 정리하는 능력이 더 귀해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글을 ‘결과’로만 보지만, 현실에선 글이 기획·연구·제작·협업을 묶는 ‘프로세스’입니다.
간호학과로의 이동은 “안정”의 약속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안정은 강한 적성, 체력, 감정노동을 버티는 기질 위에서만 성립합니다. 교대근무의 리듬, 환자·보호자와의 접점, 팀 기반의 빠른 판단을 자신의 몸으로 감당할 수 있는지부터 점검해야 합니다. 경제적 이유가 크다면 더더욱 단기 수입과 장기 적성을 섞어 설계해야지, 적성을 희생해 안정만 붙잡는 선택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문창과에 남아도 길은 있습니다. 다만 “작가 되겠다” 하나로는 부족합니다. 글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정하고, 그 문제를 증명하는 결과물을 꾸준히 쌓는 것이 핵심입니다. 저는 성인 초심자에게 세 갈래의 포트폴리오를 권합니다. 하나는 창작(시·단편·에세이), 하나는 비평·리뷰·리서치 리포트, 하나는 실무형 문서(기획안·브랜디드 콘텐츠·보도자료·뉴스레터). 이 셋이 있어야 “문장으로 가치 만드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수입 구조도 세 층으로 쌓으십시오. 생활비를 받쳐 줄 고정 수입, 경력을 키우는 프로젝트 수입, 시간이 쌓일수록 커지는 지식재산 수입입니다. 주 3~4일 고정 알바나 파트타임을 두고, 남는 시간에 로컬 인터뷰·리포트·브랜디드 글쓰기 같은 소규모 프로젝트를 연결하세요. 동시에 브런치·노션·개인 사이트에 아카이브를 구축해 장기적 유입과 협업 제안을 받는 통로를 열어두는 겁니다. 토익은 목표 점수를 정해 단기간에 마무리하시고, 그 에너지의 대부분을 포트폴리오로 돌리십시오. 서류의 문턱은 영어가, 합격의 핵심은 작업물이 결정합니다.
세 달만 집중적으로 설계해 봅시다. 첫 달엔 관찰과 질문으로 일상의 안테나를 세우고, 매일 90분은 “사유 근육” 시간으로 비워 두세요. 질문을 미친 듯 모으고, 도시의 한 장면을 기록하고, 읽은 것을 메타인지로 정리하고, 주 1회 온라인·오프라인 토론으로 바깥에 내보내는 루틴입니다. 둘째 달엔 로컬 이슈를 취재해 3000~6000자 논픽션 한 편을 완성하고, 병행해 20행 내외의 시 혹은 1500자 단편을 주 1편씩 쌓습니다. 셋째 달엔 이것들을 묶어 미니ZINE·PDF 포트폴리오·웹 연재로 배포하세요. 결과물은 작게라도 반드시 ‘공개’되어야 다음 기회와 연결됩니다.
네트워크는 성인의 학교입니다. 동아리 대신 작은 현장에 들어가세요. 독립서점 북토크 스태프, 로컬 페스티벌 프로그램 보조, 동네 잡지의 필자 공모 같은 곳은 돈이 크지 않지만 사람과 기회를 줍니다. 이때 “무상노동”에 빠지지 않도록 기간·산출물·크레딧을 명확히 합의하세요. 협업을 시작할 땐 기획 요약, 일정, 체크리스트를 문서로 먼저 제시하면 신뢰가 빠르게 쌓입니다.
간호학과를 고민한다면 체험 없이는 결정하지 마십시오. 요양병원 보조·병동 사무 보조·의료현장 봉사 같은 단기 체험으로 몸의 반응을 먼저 확인하세요. 하루만 들어가도 일의 결이 보입니다. 그 체감이 “이 길이어도 힘들지만 가겠다”로 정리된다면, 그때 시간표와 재정 계획을 촘촘히 다시 짜면 됩니다. 반대로 “내 정서는 현장과 맞지 않는다”가 분명해진다면, 미련 없이 내려놓아야 합니다.
가족의 기대가 마음을 무겁게 할 겁니다. 설득은 말보다 설계도가 먹힙니다. 월별 수입·지출 추정표, 세 달치 포트폴리오 달력, 지원할 인턴·공모 리스트를 한 장으로 정리해 보여주십시오. “우리 아이가 고민 중”이라는 막연함이 “이 계획이면 6개월 뒤 숫자로 확인되겠구나”로 바뀌면 응원이 시작됩니다. 성인은 열정이 아니라 책임으로 신뢰를 얻습니다.
창작의 감각도 업데이트해야 합니다. 학창시절의 기승전결과 도식적 감정 표현에서 벗어나, 오늘의 언어를 몸에 들이세요. 이미지의 전환, 파편의 호흡, 낯선 비유가 의미를 어떻게 이동시키는지 직접 실험해 보십시오. AI를 도구로 쓰되, 프롬프트의 핵심은 ‘무엇을 왜 만들려는가’라는 문제정의입니다. 좋은 프롬프트는 결국 좋은 질문에서 나옵니다. 질문을 잘 던지는 사람만이 도구를 지배합니다.
멘탈을 지키는 방식도 필요합니다. 비교는 애초에 게임이 되지 않습니다. 대신 반복을 기록하세요. 오늘의 문장 수, 읽은 페이지, 대면 대화 횟수 같은 작은 지표가 쌓일수록 자신감은 데이터로 변합니다. 실패는 피드백 회수로 환전하십시오. 떨어진 원고는 수정 기록을 남기고 다른 매체로 돌려보내세요. 창작은 낭만이 아니라 운영입니다.
정리하자면, 간호로 갈 것인가 문창에 남을 것인가는 “안정 대 열정”의 싸움이 아닙니다. “나의 몸과 사유가 어디에서 더 오래 버틸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간호가 맞다면 주저하지 말고 가십시오. 맞지 않다면 성인으로서의 문장 노동을 설계해 버티고 전진하십시오. 어느 쪽이든 세 달짜리 계획과 수입 구조, 공개된 결과물이 있어야 길이 이어집니다.
저는 오늘도 책과 기사와 다큐와 교육을 오가며 살습니다. 그 길이 가능했던 이유는 화려한 재능이 아니라, 글을 ‘하나의 직업’이 아니라 ‘직업들을 묶는 허브’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밤 첫 관찰 일지를 쓰고, 이번 주 안에 짧은 단편의 선언문을 만들고, 다음 달엔 로컬 논픽션 한 편을 세상에 내보내세요. 성인의 삶은 꿈이 아니라 운영입니다. 다만 잘 운영된 꿈만이 오래갑니다. 당신의 선택을 응원합니다.